나의 그림이야기

정읍사_ 안 좋은 추억 (정읍사 한글문자도, 정읍사 그림)

새록새록 한글과우리그림 2021. 10. 26. 02:06

한글, 알파벳, 한자, 아랍문자 어느 나라의 문자든 나에게는 모두 아름답게 느껴진다.

특히 자주 접하지 못한 나라의 문자는 더욱 그러하다.

어릴 적에 미얀마에 계신 어머니 친구 분께서 연하장을 보내오셨는데 별다른 장식 없이 미얀마 전통문양으로 보이는 테두리에 미얀마 문자로 달랑 "복된 새해 되세요." 뭐 이런 비슷한 내용의 글만 인쇄되어 있었다.

타국인이게 뜻을 알 수 없는 문자는 테두리를 두른 전통문양과 다를 바 없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그때 글씨도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예를 왜 하는지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글씨의 아름다움은 마음으로만 느낄 뿐이지 나의 글씨는 악필 중에 악필로 내 필기노트는 나만 알아볼 수 있었고 1년에 한번 있는 글씨 대회에는 한 번도 시간 안에 칸을 채워서 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속도도 느렸다.

주변에서는 "그림은 잘 그리면서 왜 글씨는 이렇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고 글씨를 써봐라" 이렇게 얘기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천재 중에 악필이 많다는 전혀 근거 없는 소리를 해가면서 레포트도 파일로 보내는 요즘 세상에 글씨 때문에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간고사에서 내 옆에 앉아서 내 답안을 토씨하나 바꾸지 않고 베껴낸 녀석의 점수는 A+가 나오고 나는B+가 나오자 당장에 펜글씨 교본을 사들고 왔다.

학과동기들은 이런 나를 위해서 교본 사이사이에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힘내" 등등 응원의 메시지를 나름 멋진 글씨체로 남겨주었다.

나는 그때서야 새삼 알 수 있었다.

게시판에 붙어있는 나의 대자보 앞에 왜 학우들이 피사의 사탑처럼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는지를. 내 글씨가 점점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교내에서 대자보를 가장 예쁘게 쓴다는 사범대 여학우들에게 가서 대자보 쓰는 방법을 배워왔다.

그들은 동글동글 예쁜 글씨체도 모자라서 대자보에 온통 알록달록 꽃, 포토넝쿨, 귀여운 사람얼굴로 장식을 했다. 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았고 그대로 우리 학과 대자보에 적용했다가 학과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욕을 실컷 먹었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나의 문자도다.

정읍사 / 77×144cm / 수채 / 2008/ 신현경

그림과 문자는 나에게는 친할래야 친해질 수 없는 분야다.

거기에 정읍사라.

중학교 까지 따로 공부를 안 해도 문제없었던 국어과목에 고등학교를 진학한 후부터 고전이라는 과목이 추가되면서 머리에 쥐나도록 공부해야했다.

‘공무도하가’, ‘가시리’, ‘정읍사’는 내가 싫어하는 삼대 시조다.

수업시간 내내 빨간 펜으로 돼지꼬리 땡야를 해가며 몇 줄 안 되는 시조에 여백도 모자라 포스트잇 까지 붙여가며 와 닿지 않는 설명을 곁들였다.

정읍사는 어느새 형형색색의 펜과 포스트잇으로 장식되어졌다.

그리고는 다음 수업시간에 시조를 외워서 틀리는 곳 마다 손바닥을 30cm 자로 맞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테스트가 있었다.

여기 고서적과 같은 분위기의 배경에 동글동글한 예쁜 글씨체와 고운 민화가 장식된 문자도가 있다.

달과 산은 시조 내용에 있으니 그려 넣었을 테고. 행상나간 남편을 걱정하는 여인내의 이야기라서 화병과 등불을 넣었나? 그렇다면 꽃과 나비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가사와 비슷한 맥락? 문자를 회화로 표현하려는 작가의 세심한 노력이 보인다.

안 좋은 추억이 가득한 것들을 모아놓은 이 작품이 한 폭의 예쁜 그림으로 느껴지니 일단은 나에게는 훌륭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2008. 하영희
[출처] 신현경 개인전 2008 -작품감상 (우리그림 도화원) | 작성자 smyn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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